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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이야기.
책 제목 : 연극치료와 함께 걷다
저자 : 이효원
이 자료를 공유하는 이유 (-쏭-)
제가 작년에 참여했던 theatre for living (본 워크숍에서 시민참여연극으로써 표현한 것) 워크숍 에서는 ‘치료’는 본 워크숍의 영역이 아니라고, 당시 워크숍을 진행했던 선생님은 선을 그었습니다. 즉, 장을 열어주고 (선택의) 옵션을 정리해주는 역할까지만이 본 워크숍의 영역이지, intervention까지 들어가는 건 예술의 영역을 초과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참가자 중에서는 이와 반대로 치료적인 부분까지 병행되어야하지 않겠느냐 하는 의견이 있기도 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치료’라는 것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치료라고 부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치료라는 영역에 “변화가 필요한 부분을 스스로 발견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앞서 theatre for living의 영역도 일종의 ‘치료’ 영역에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본 자료는 연극 “치료”에 대한 책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theatre for living 워크숍과 굉장히 흡사한 방법과 흐름들을 본 책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시민참여연극’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공유드립니다.
(p24~29) 극적 표현의 연속체
얼음땡, 여러가지 걷기, 상황 속에서 걷기, 감정의 이미지 그리기, 이야기 만들기, 장면 만들기까지. 연극치료는 이처럼 다채로운 활동을 무리없이 하나로 담아냅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얼음땡이나 감정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은 연극과 별 상관없는 단순한 놀이거나 연극보다는 미술에 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여러 가지 걷기나 상황 속에서 걷기 역시 관객에게 장면을 보여 준다거나 정밀한 약속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상연 행위와는 동떨어진, 별로 연극적이지 않은 활동이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어떤 곡절이 숨어 있을까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연극이라 말하는 상연 행위는 극적 활동의 한 형태로서 극적 창조성이 최대한으로 발현되는 발달상의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자기 이야기를 하며 글을 읽고 쓰는 언어 능력이 일정한 단계를 밟아 성숙해 가듯이, 연극 역시 완성된 형태로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성장과 함께 발달해 가는 극적인 표현 능력이라는 것이지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아기들은 소리와 움직임을 가지고 놉니다. 발을 버둥대거나 손가락을 빨면서 좋아하고 또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그것이 마치 제 몸에 연결되지 않은 다른 무엇인 양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보기도 하고 그러다 무슨 이유에선지 싱긋 웃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울거나 웃을때뿐 아니라 딸국질을 하거나 방귀를 뀌면서도 그 낯설고 흥미로운 소리에 반응하며, 또 다양한 울음소리로 배가 고프다거나 밑자리가 축축하다는 의사를 표현하면서 세상과 자기에 대한 탐험과 소통을 시작합니다. 다양한 감각과 움직임을 실험하는 유아의 이러한 놀이는 아기의 몸과 엄마를 모방할 수 있는 능력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첫돌을 넘기면서 자기와 다른 사람을 분별할 수 있게 되면서 아이들은 상징적인 사고와 표현이라는 비약적인 발전을 보입니다. 그래서 그 또래 아이들은 모든 물건이나 현상이 살아있다고 여기며 자기가 경험한 바를 상징적으로 재생하곤 하지요.
실례를 들어볼까요? 제 아이가 16개월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전원을 올리면 멍멍 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강아지 인형을 좋아해서,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도 한쪽에서는 계속해서 그 강아지 인형을 시끄럽게 짖게 해놓았지요. 그런데 하루는 목이 마른지 물병을 찾더니 자기가 한 모금 마신 후에 강아지의 입에 젖병을 물리고 물을 먹이는 시늉을 하더군요. 그러고 난 뒤에는 한동안 밥을 먹을 때 마다 제 숟가락을 강아지 입에 넣고 “밥,밥” 해대며 먹으라고 권하곤 했습니다.
두 돌 무렵엔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물고리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서 스케치북 가득 작은 물고기를 그리고, 가운데 큰 거북이 한 마리를 그려주었지요. 아이는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손가락으로 물고기 한 마리를 문질러 입에 가져갔습니다. 처음엔 크레용을 먹으려 하는 줄 알고 그러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는데, 두세번 같은 행동을 반복하기에 다시 보니 물고기 먹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죠! “찬이, 물고기 먹는 거야?” 했더니, “응”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아이가 처음 보이는 행동에 신기하고 재미있어진 제가 계속 물었습니다. “물고리 맛있어?” 또다시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그럼 엄마도 물고기 주세요.” 아이는 신이 나서 스케치북에 그려진 물고리를 열심히 제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입을 과장되게 오물거리며 꿀꺽 삼키는 제 모습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흥미롭게 바라보면서 자기 입을 달싹거렸지요. 그러고는 할머니와 삼촌에게도 물고기가 배달되었고, 모두 맛있어 하며 받아먹자 아이는 더욱 신이 나 그림 속의 물고기를 모두 잡아댈 기세로 온 집안을 뛰어다녔습니다.
말을 배우면서부터는 이러한 극적 표현이 한 번 더 비약을 하여 동일시와 역할 연기의 요소가 포함된 간단한 극적 놀이를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다시 한번 제 아이를 등장시키겠습니다. 몇 달 뒤면 만 네살이 되는 요즘 가장 재미있어 하는 것 중 하나가 괴물놀이 입니다. 괴물이 된 아빠가 자기를 잡아가면 엄마 슈퍼맨이 괴물과 싸워 구해주는 아주 간단한 줄거리의 역할극이지요. 처음에는 괴물이 잡으러 와도 순순히 안겨 깔깔거리고 도와주러 간 슈퍼맨을 괴물과 함께 때리기도하는 등 역할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더니, 요즘 와선 괴물이 무서운 소리를 내며 다가오면 저리 가라며 제법 반항도 하고, 슈퍼맨이 굼떠 구조에 시간이 걸린다 싶으면 “도와줘!”하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역할을 바로 찾아가는 중이지요.
그렇게 성장을 거듭하여 엄마보다 또래와 어울리기를 즐기는 나이가 되면 아이들의 극적 놀이는 형식을 갖춘 즉흥극으로 발전합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서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라라나 케로로(만화영화 주인공)가 되어 자발적으로 즉흥극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요. 그리고 만일 어른이 이끌어 준다면 아이들은 이러한 환상과 즉흥극을 일관성 있는 줄거리와 인물이 등장하는 본격적인 장면으로 극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극적 표현 능력이 고도의 형식을 갖추는 단계에 이릅니다. 즉흥에 의존하지 않고 처음부터 텍스트를 가지고 장면을 만들 수 있게 되지요. 그때 텍스트는 장면 전체의 구조뿐 아니라 연기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지시하는 근거로서 작용하고, 아이들은 그것을 형상화하여 관객에게 공개적으로 보여 주는 상연 행위를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게 됩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이때 이미 극적 표현 능력이 완성되지만, 그 뒤로도 발전은 지속됩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즉흥극과 연극의 양면에서 모두 고른 성장을 나타내며, 특히 유아기부터의 극적 발달 단계를 다시 한번 개괄하면서 유희성과 자발성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주변을 많이 의식하고 개인됨에 대한 욕구가 승한 사춘기 후기의 특성상 상연을 통한 보여주기에 모두가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성인기는 역할 연기를 통한 지속적인 사회화 과정을 특징으로 하며, 어른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연극적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극적 형식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말한 극적 표현 형식의 발달 과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감각 운동적 놀이 – 극적놀이 – 응용된 극적 활동 - 즉흥극과 역할 연기 – 확장된 극화 – 연극 공연[1]
앞서 예로 든 세션의 내용을 이에 비추어 다시 살펴보면, 술래에 피해 공간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얼음땡과 여러 가지 걷기는 별 극적 의미 없이 몸의 움직임을 주로 한다는 점에서 감각 운동적 놀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가상의 상황과 감정을 단서로 다양한 걸음걸이를 경험하는 활동은 극성을 띠되 그 표현을 걸음걸이로 제한하는 간단한 극적 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지배적인 감정의 이미지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응용된 극적 활동에 속할 테고, 그것을 다시 장면으로 만들어 발표하는 것은 확장된 극화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볼 때 연극치료는 단순히 연극 공연이라는 상연의 행위뿐만 아니라 우리가 발달 과정에서 경험하는 극적 표현 형식 모두를 포괄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p29~p33)EPR
영국의 연극치료사 수 제닝스는 인간의 극적 발달 과정을 EPR이라는 개념으로 약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합니다. 그 기본적인 내용과 흐름은 감각 운동적 놀이에서 출발하여 연극공연으로 완성되는 극적 표현의 연속체와 동일하지만, 그러한 극적 표현이 무엇을 매체로 이루어지는가에 초점을 맞춰 새롭게 읽은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약자의 머리글자를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E는 몸을 통한 표현을 뜻하는 체현(Embodiment)이고, P는 자기 외부의 대상을 빌어 표현하는 투사(Projection)이며, R은 역할(Role)을 말하죠. 그리고 수 제닝스는 인간의 극적 발달 과정이 출생과 동시에 시작되어 일곱 살 무렵에 그 한 주기를 완결한다고 설명합니다. 생후 1살이 될 때까지 아기들은 모든 경험과 표현을 몸의 움직임과 감각에 의존합니다. 손에 잡히는 건 뭐든지 입으로 가져간다든지, 옹알이를 하며 자기가 낼 수 있는 소리를 실험한다든지,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가능한 움직임의 한계를 탐험하거나 여러 형태의 울음으로 필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그 단계를 체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다 첫돌을 넘기면서부터는 곰 인형이 배가 고프다고 말하는 식으로 외부의 대상에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옮겨놓는 투사적 행동이 나타납니다. 이런 투사적 표현은 극적 상상력이 발달하면서 그림 그리기, 찰흙놀이, 조각 그림 맞추기, 이야기 만들기 등으로 확장됩니다. 그렇게 하다가 6-7세 무렵이 되면 자기가 아닌 다른 인물이 되어 연기를 할 수 있는 역할의 단계를 맞습니다. 여러 가지 매체를 빌어 이야기하던 데서 직접 역할을 맡아 이야기를 극화하는 거죠.
EPR 에 기준하여 보기로 든 세션을 다시 한번 구분해 볼까요? 얼음땡 놀이와 여러가지 걷기는 참여자 자신의 몸을 표현의 매체로 삼기 때문에 체현에 속하며, 지배적인 감정을 선택하여 그림으로 나타내고 거기서 다시 등장인물을 뽑아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그림과 이야기라는 자기 외부의 매체를 사용하는 투사활동이며,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극화하여 발표하는 데서는 단순하나마 역할을 연기하게 되므로 역할 활동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EPR 은 이처럼 연극치료에서 사용되는 극적 표현 매체를 일목요연하게 구분하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작업을 하다보면 간혹 “연극치료하고 해서 연극만 할 줄 알았는데, 그림도 그리고 놀이도 하고 춤도 추네요,” 하면서 즐거운 의구심을 표현하는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EPR 개념은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는 것 모두가 매체만 다를 뿐 극적 표현의 선상에 있음을 말해 주지요. 단순히 ‘연극이 종합 예술이라서 그렇습니다’라는 설명보다 훨씬 탄탄한 근거를 가지고 말이지요.
EPR 은 극적 행동이 인간의 생래적인 본능으로서 어떤 단계를 밟아 성숙해 가는지를 보여 줄 뿐 아니라 연극치료의 실제 작업에서도 요긴하게 쓰입니다. 제닝스에 따르면, 유년기를 지나 극적 발달의 한 주기를 완결하고 나면, 사람들은 대게 체현과 투사와 역할 중 어느 한 가지 표현 유형에 집중하기 쉽다고 합니다. 체현에만 익숙하다거나 투사활동만을 즐긴다거나 하는 식이죠. 그런 경우 연극치료는 내담자가 세 가지 형태의 극적 표현을 고루 조화롭게 발전시키도록 돕는 것을 작업의 방향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에 따라 내담자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여기는 표현 형태로 시작해서 낯설어하고 두려워하는, 충분히 발달되지 못한 다른 형태로 옮겨가는 흐름으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또한 극적 발달 단계로서의 EPR 에 착안하여 발달적 관점을 적용한다면, 내담자의 문제는 극적 발달 과정을 온전하게 거치지 못하고 어느 한 표현 형태에 고착되거나 반대로 특정 단계를 건너뛴 데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전제 아래서는 내담자가 고착되어 있는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이행하도록 돕거나 건너뛴 단계를 충분히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연극치료 작업이 취할 수 있는 하나의 흐름이 됩니다.
한편 EPR 은 일반적인 연극치료 작업의 구성 원리이기도 합니다. 한 세션의 실제 활동 목록을 찬찬히 되짚어 보면, 주로 몸을 많이 쓰는 체현적인 활동으로 시작하여 조각상 만들기나 그림 그리기나 오브제를 활용한 투사 활동을 통해 초점을 맞추고 그 결과물을 극화하여 장면으로 발전시키는 흐름으로 이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 원리는 한 세션에만 국한되지 않고 연극치료 작업 전체에도 무리 없이 적용됩니다. 기간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작업 초반에는 주로 몸으로 부딪치며 낯을 익히는 체현 활동이 주를 이루고, 중반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기 내면을 탐험할 수 있는 투사 활동이 두드러지며, 후반에는 그동안 집단 안에서 축적된 내용을 장면으로 극화하는 역할 활동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를 모든 연극치료 작업에 일반화할 수는 없으며, 작업의 형태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연극치료는 참여자 자신의 몸을 매체로 하는 체현과 외부 대상에 내면을 덧입혀 표현하는 투사와 자기가 아닌 인물을 연기하는 역할의 세가지 표현 양태를 두루 아우릅니다.
(p40~45) 세션의 구조
앞서 연극치료가 매체로 삼는 다양한 극적 행위들은 허구성 혹은 극적 현실이라는 특성으로 환원되어 연극치료의 본질을 형성한다고 말했습니다. 연극치료 작업은 일상의 현실에서 극적 현실로 이동했다가 다시 일상의 현실로 돌아오는 일종의 여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연극 치료만 아니라 우리 삶의 대부분은 떠남과 겪음과 돌아옴으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여행의 연속입니다. (중략)
물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할 때도 허구로의 이동이 가능하지만, 연극 치료에서 내담자는 일방적으로 제시되는 환영을 눈이나 귀를 통해 수동적으로 누리기보다 자기가 원하는 극적 현실을 직접창조하고 그것을 몸으로 살아내는 주체적인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연극치료의 내담자는 다른 여행자들보다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소통을 말에 의존하며, 그로써 이루어지는 소통의 행위 역시 관습적이거나 의례적인 특성이 강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극적 공간에서는 말만으로는 부족하지요. 말 이전에 몸과 소리가 있으며, 여러 사람의 몸과 소리로써 지금 여기에서 하고 싶거나 필요한 것을 함께 만들고 나누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 일상 현실과 극적 현실이 요구하는 바가 많이 다르다는 겁니다.
연극치료는 그런 의미에서 내담자가 좀 더 매끄럽게 극적현실로 이동하여 다양한 극적 표현을 준비하도록 돕는 웜업으로써 세션을 시작합니다. 웜업은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을 덥히는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차갑게 굳어있는 건 이렇게 저렇게 변형하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주로 공간을 신나게 뛰어다닐 수 있는 게임을 통해 열을 내면서 몸을 준비시키며, 그와 함께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나 미처 다하지 못한 과제 등 일상의 짐을 벗고 온전히 극적 현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시킵니다. 웜업 단계에서는 움직임을 자극하는 활동으로 집단의 에너지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지나치게 과열되어 있거나 산만한 집단의 경우에는 움직임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호흡을 가라앉히는 활동으로 세션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웜업을 통해 극적 현실로 이동할 준비가 되면, 그 다음에는 본 활동 단계로 넘어갑니다. 본 활동이라 함은 해당 세션에서 목표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배치한 일련의 활동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작업을 시작하는 첫 세션에서 ‘내담자들이 서로 얼굴을 익히면서 친숙해지게 한다’라는 목표를 설정했다면, 본 활동 단계에서는 인터뷰를 하거나 손가락 인형을 만들어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과일 샐러드[2] 같은 게임을 하면서 개인적인 정보를 공유하고 마음의 벽을 낮출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본 활동 단계에 배치되는 활동은 주로 투사나 역할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며, 대개의 경우 투사 활동을 통해 내담자들의 관심에 초점을 부여하고 그 결과를 장면으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극으로 이어지게 함으로써 좀 더 확장된 표현과 통찰을 가능케하는 흐름을 따릅니다.
본 활동 단계에서 내담자들은 놀이에서 한 걸은 더 나아간 본격적인 극적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그 안에서 십여 년 전에 겪은 어떤 체험을 다시 불러올 수도 있고, 자기 안에 있는 여러 모습을 끌어내 움직여 볼 수도 있으며, 평소에 늘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 속의 어떤 인물이 되어 본다거나 혹은 집단 내 다른 내담자의 역할을 맡아 연기해볼 수도 있고, 특정한 감각에 온전히 집중하여 그것으로만 소통한다거나 아이들처럼 놀잇감을 이렇게 저렇게 변형하며 놀 수도 있으며, 여러가지 가면을 쓰고서 자기 속에서 어떤 인물이 나오는지를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방식의 탐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웜업에 더하여 하나의 문지방을 더 넘어야 합니다. 연극치료에서는 그것을 ‘역할 입기’라고 말합니다. 그때의 역할은 텍스트에 등장하는 특정한 인물을 지칭할 수도 있고, 극적 현실을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자세로 수용하고 만들어가는 주체적 참여자로서의 역할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내담자들은 역할을 입음으로써 비로소 허구의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으며, 그 안에서 탐험을 충분히 진행한 뒤에는 역할 벗기로써 마무리 단계로의 이행을 준비합니다.
역할 벗기란 말 그대로 극적 현실 안에서 입었던 역할이라는 옷을 벗고서 일상의 현실로, 노라가 아닌 아무개로 돌아가는 것을 이릅니다. 역할 벗기를 돕는 방법은 여러가지 입니다. 가장 간단하게는 제자리에서 뛰거나 손으로 몸에 묻은 먼지를 떨어내는 동작을 하기도 하고, 극적 체험이 진행되었던 공간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거나, “이제부터 나는 노라가 아니라 아무개입니다”라고 말을 하거나, 특정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간단한 의식(ritual)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이들 역할 벗기 활동의 공통점은 내담자들이 방금 전까지 몰입해 있던 극적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고 멀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실제 작업에서 연극치료사는 역할 벗기를 빠뜨리거나 소홀히 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합니다. 내담자들은 극적 체험으로 잘 이끌어 가는 것이 연극치료사의 역할이지만, 극적 현실에서 다시 일상의 현실로 안전하게 되돌려 놓는 것 역시 간과해선 안될 책임입니다. 역할 벗기가 제대로 수행되지 않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은 전문 연극배우들을 통해 간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극적 현실은 그 허구성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현실과 동일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극적 현실에서의 경험을 일상의 경험과 혼동하지 않도록 명확하게 분리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나이가 어리거나 극적 현실과 일상 현실의 경계와 그 구별에 익숙하지 않은 내담자일수록 역할 벗기의 중요성은 더욱 큽니다.
역할을 벗은 다음에는 마무리 단계로 나아갑니다. 마무리단계에서는 해당 세션에서 일어난 경험을 찬찬히 되돌아보면서 거기서 얻은 발견과 느낌을 정리하고, 연극치료 공간에서 일상의 공간으로 옮겨갈 준비를 합니다. 세션을 마무리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말로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며, 그 밖에 쿠션이나 보자기 같은 특정한 사물을 활용하는 투사적인 방식이 가능하고, 공간을 움직여 다니면서 해당 세션의 경험을 개별적으로 환기하고 저장할 수도 있습니다.
(p45~48)연극치료와 의식의 구조
이처럼 크게 웜업 – 본 활동 – 마무리의 세 단계로 진행되는 연극치료의 구조는 의식과 그 뿌리를 같이 합니다. 여러 의식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형태로 통과의례를 꼽을 수 있지요. 통과의례란 말 그대로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며 죽음을 맞는 중요한 고비를 지날 때 그 새로운 상태로의 변화를 구분하고 확증하는 의식을 이릅니다. 그래서 통과의례를 겪는 사람은 그 의식에 깃든 신성한 힘에 의지하여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없음에서 있음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되는 거듭남의 과정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통과의례는 그러한 죽음과 재생의 내용을 세 겹의 구조에 담아냅니다. 첫 번째는 준비 단계로서, 의식을 치를 장소를 일상적인 공간과 구별되도록 마련하고, 통과의례를 치를 사람 역시 일정한 절차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 격리되어 신성한 경험과 접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듭니다. 그러한 정화 의식은 보통 목욕, 삭발, 단식, 금욕 등의 금기와 관련되지요. 그리고 그 과정이 마무리되면서 본격적인 통과의례가 시작됩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 참여자는 상징적인 죽음을 경험합니다. 죽음에 비견되는 시련과 고통을 기꺼이 견뎌 이겨냄으로써 새로운 삶의 단계로 들어설 수 있는 일종의 자격이 주어지는 셈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고문에 준하는 신체적 고통이나 금단적인 금욕이 행해지기도 하고, 의식을 마비시키는 음식이나 음료를 취함으로써 가사 상태를 유도하기도 하며, 괴물에게 잡아먹힌다는가 사지가 찢긴다는가 하는 행위를 연극적으로 재연하기도 합니다. 어떤 절차를 따르든 죽음의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매우 엄숙하고도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매우 극적인 형태를 띠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참여자의 신분은 매우 모호해서 과거의 지위가 적용되지도 않고 또 완전히 새로운 지위를 획득하지도 못한 중간적인 성격을 나타냅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서 참여자가 일정한 관문을 통과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음을 공표하는 통합의 의례를 치릅니다. 그리고 문신이나 새로운 머리 모양 혹은 반지 등으로 새로운 탄생을 상징하지요.
연극치료는 통과의례의 이러한 흐름을 그대로 모방합니다. 웜업은 참여자를 일상 현실로부터 분리하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유연하게 만듦으로써 이후에 진행될 극적 탐험을 예비합니다. 연극치료를 위해 따로 마련된 공간, 그 공간에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상 현실을 벗고 극적 현실로 옮겨 갈 채비를 하는 것 모두가 통과의례의 준비 단계를 빼닮았지요.
본 활동 단계에서 참여자들은 극적 구조로 들어가 자기와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탐험합니다. 탐험은 필연적으로 낯선 것과의 만남으로 이어지지요. 더구나 그 낯선 것이 자기 안에 묻어 두었던 고통스런 경험이나 아픈 감정이나 심각한 문제나 복잡하게 얽힌 관계일 때, 그 만남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참여자들이 극적 현실안에서 맞닥뜨리는 그 위험은 변화의 전제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극적 현실은 자기 속에서 찾아내야 할 파괴적인 상태이자 진정한 미래가 태어날 기회를 얻기 전에 과거가 죽음을 자는 시간과 공간이라 할 수 있으며, 이 혼돈은 연극치료 과정 전체의 모체이며 참여자들에게도 진정한 변화를 생산해낼 수 있는 그 위력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3]
이렇듯 본 활동은 참여자들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혼돈을 극적 구조로써 발견하고 경험하게 만들며, 그러한 위험을 통해 실제적인 변화를 도모합니다. 그러한 특성은 죽음을 다양한 상징적 방식으로 재연하거나 모방하는 통과의례의 두 번째 단계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또 해당 단계에서 과거나 미래의 것이 아닌 모호한 상태로 유지되는 참여자의 신분 역시 극적 현실 안에서 참여자가 입고 살아내는 역할의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특성과 통합니다.
마무리 단계에서는 역할을 벗고 극적 탐험 과정에서 느끼고 발견한 바를 공유하면서 변화의 경험을 확증하고, 일상 현실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이 또한 이전 단계를 통합하면서 그 결과로 나타난 새로운 존재를 공표하는 통과의례의 마지막 단계와 고스란히 상응합니다. 연극치료가 이처럼 의식의 구조를 취하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인류와 함께하면서 인간의 변화를 추동하고 확증하는 상징적 형식으로서 의식이 점한 지위와 그 힘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연극치료 역시 내담자의 변화를 최종 목적으로 하는 상징적 행위니까요.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연극치료의 세션은 웜업- 본활동 – 마무리의 세 단꼐로 구성됩니다. 이 구조는 다시 일상현실에서 극적 현실로 이동했다가 일상현실로 돌아오는 여정에 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역할에 초점을 맞춰 고쳐말하면 역할 입기에서 역할 살기를 지나 역할 벗기로 이어진다 할 수 있고, 내담자가 견뎌내야하는 정서적 부담을 기준으로 할 때는 안전한 상태에서 출발하여 극적 탐험이라는 위협을 감수한 뒤에 다시 안전한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 단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처음과 중간과 끝과 일치하며, 준비에서 피안으로의 여행 그리고 새로운 탄생[4]으로 이어지는 통과의례의 구조와도 어긋남 없이 겹쳐집니다.
[1]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연극 치료, 로버트 랜디 지음, 이효원 옮김, 울력, p143
[2] (쏭이 쓴 각 주) 3차 워크숍 때 해보아요
[3] Practical Approaches Dramatherapy, Roger Grainger & Madeline Anderson-Warren, JKP, p.127
[4] 통과제의와 문학, 시몬느 비에른느 지음, 이재실 옮김, 신화상징총서 3, p26.